
컴퓨터 예술, 그 진보와 퇴보 (1995년 3월, 월간 "예술의 전당")
실험실에서 기계를 이용하여 그림을 만들면서 시작한 컴퓨터그래픽(Computer Graphic) 이 국내에 소개된지는
이제 15년이 채 안된다. 그나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컴퓨터그래픽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지는 최근 5년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컴퓨터그래픽이란 분야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 발전하였고 그 용도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곳까지 파고들어서 이젠 오히려 '컴퓨터그래픽'이란 단어자체가 식상할 정도이다.
웬만한 SF 영화에서도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을 받지 않는 영상은 생각하기 어려울정도이니 말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겐 컴퓨터그래픽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많이 쓰여진 분야로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 않은
의욕으로 대중과의 접촉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예술가들일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프로그래밍에 의한 화상처리와 키보드를 통한 입력으로 그래픽데이터를 처리하던것이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와 마우스(Mouse) 같은 직관적인 입력장치들이 보급되면서부터 컴퓨터그래픽의
획기적인 발전을 야기시켰고 이러한 변화는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으며 이들의 새로운 표현방법으로서의
접근은 컴퓨터기술의 발전과함께 자신들이 원하는 형상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제각각의 다양하고도 창조적인 시도들은 그 자신들이 오래전부터 갈망해왔던 꿈들을 하나둘씩 현실화시키기
시작하였다.
안료가 아닌 빛 그자체의 페인팅을 통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그 무엇과도 다른 전혀 새로운 표현 매체였으며
컴퓨터애니메이션(Computer Animation) 기술을 통하여 예전부터 바래왔던 시간과 운동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3차원 컴퓨터그래픽스기술과 홀로그램(Hologram)을 이용한 입체영상제작기술들은 오랜
시간동안 원근법에 의존한 허위공간 꾸미기에 익숙해진 화가들에게 새로운 차원을 선사하였다.
물론 이러한 표현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창작활동을 한 예술가들에게 찬사만 있었던것은 아니다.
컴퓨터그래픽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기계가 그려준
그림' 이라며 예술적 가치가 없는 싸구려 출력물로 평가하였고 불행하게도 이러한 편견은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더 불행한 것은 컴퓨터 그 자체와 컴퓨터그래픽의 제작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연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예술가의 몫인 상상력,창조력 마저도 컴퓨터에 의존한 채 스스로 아티스트임을 자처하는 작가들도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컴퓨터는 사고를 표현하기위한 도구이지 그 자신이 사고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되며 작품의
질보다 제작장비,또는 출력비용에만 집착하는 것은 별 볼일 없는 물건을 포장으로 숨기려는 것과 같다.
좋은 아이디어는 보잘것 없는 컴퓨터,모니터, 또는 프린터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훌륭할수 밖에 없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아이디어는 아무리 좋은 장비와 비싼 출력과정을 거친다 해도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샤갈이 썼던 100개의 색 대신 200개의 색을 사용했다고 해서 두배 더 나은 예술가라고 할수 있을까?
작품을 대하는 작가 자신의 진지한 자세와 창작열 없이 컴퓨터에만 의존하려 한다면 결국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예술가 자신의 역량은 퇴보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